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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여행] 유교 문화의 성지 화음동정사지의 겨울 풍경

我空 2012. 12. 31. 00:01

김수증(金壽增)
1624(인조 2)∼1701(숙종 27).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성리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연지(延之),

호는 곡운(谷雲). 할아버지는 상헌(尙憲)이다.
1650년(효종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652년에는 세마(洗馬)가 되었다.
그뒤 형조정랑·공조정랑을 거쳐

각사(各司)의 정(正)을 두루 역임하였다.

젊어서부터 산수를 좋아하여

금강산 등 여러 곳을 유람한 뒤 기행문을 남기기도 하였으며,

1670년(현종 11)에는

지금의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영당동에 복거(卜居)할 땅을 마련하고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지었다.
그뒤 1675년(숙종 1)에 성천부사로 있던 중,

동생 수항(壽恒)이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유배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농수정사로 돌아갔다.
이때 주자(朱子)의 행적을 모방하여 그곳을 곡운(谷雲)이라 하고,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하면서 화가인 조세걸(曺世傑)을 시켜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하는 등 글씨와 그림에 관심을 기울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송시열과 동생 수항 등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에 들어가 정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694년 갑술옥사 후 다시 관직에 임명되어

한성부좌윤·공조참판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퇴한 뒤 세상을 피해 화악산(華嶽山)골짜기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이때 그는 성리학에 심취하여 북송(北宋)의 성리학자들과 주자의 성리서를 탐독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특히 소강절(邵康節)의 음양소식관(陰陽消息觀)을 정사의 조경(造景)에 응용하였다.
이와같은 사상을 도상화(圖象化)하는 데 힘을 기울여,

주돈이(周敦頤)와 주자의 행적에 나타나는

태극도〉·〈하도낙서 河圖洛書〉·〈선후천팔괘도 先後天八卦圖〉 등을 정사의 경내에 있는 바위에 새겨 ‘인문석(人文石)’이라 하였다.
또한,

계곡에 있는 바위들에 천근석(天根石)·월굴암(月窟巖) 등

소강절의 사상시(思想詩)에 나오는 음양소식관을 담은 이름도 붙여 조경을 하였다.

 이들의 유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 성리사상이 건축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춘천의 춘수영당(春睡影堂)에 제향되었으며, 저서로는 《곡운집》이 있다.

 

 

천군 사내면 삼일리 화악산 북쪽 기슭에 강원도기념물 제63호인 화음동정사지가 있다.

이곳은 웅장한 화악산, 울창한 숲, 그림 같은 풍경이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조선후기 학자요,

문신이었던 김수증은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정착하여 은둔생활을 하면서 유학의 근본원리를 넓은 바위에 도상 화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김수증은 안동김씨 명문가에서 1624년에 출생하여 자를 연지, 호를 곡운(谷雲)이라고 하였다.

일찍이 진사시험에 합격하였고, 병조좌랑, 공조좌랑 등을 역임하면서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기행문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1689년 기사환국으로 동생인 수항이 우암송시열과 같이 유배되자 관직을 버리고 삼일리에 정착하여 화음정사를 지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송풍정·삼일정·부지암·유지당 등 여러 채의 건물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현재는 인문석 북쪽으로 삼일정, 서쪽으로 월굴암, 남쪽으로 천근석의 각자(刻字)와 기둥을 세웠던 자리만이 남아 있는데

 이는 조선조 조형예술과 성리학, 정사에 나타난 구조 및 사상적 계보 파악 등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유교의 인을 실천하면 국가는 부강하고,

백성은 행복해진다는 화음동정사지는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교문화의 성지이다.
 

 

곡운부사 김수증 추모비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곳은 이조 숙종(李朝 肅宗)왕때 곡운 김수증선생이 평강 현감성천 부사를 지내다

1696년 기사사화로 계씨(季氏)영의정 김수항이 송시열(宋時烈)과 피하(被禍)하니

이듬해 이곳 곡운정사로 돌아와 당시 어지러운 세상을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벼슬보다 학문과 자연속에서 심성을 탐 성리학(探 性理學)에 몰두 은거생활을 하시던곳으로서

이곳에서 생활화시는 동안 아들 창국(昌國), 창직(昌直), 종자(從子), 창집(昌集), 창협(昌協),

흡 창업(翕 昌業), 창견(昌絹)의 손 홍유인(孫 洪有人)과 작품으로 남긴

방화계 청옥(傍花係 靑玉), 협신여협(峽神女峽), 백운담(白雲潭), 오뢰거인용담(嗚瀨巨人龍潭),

명월계륭의연(明月溪隆義淵), 첩석대(疊石臺)를 화제로 한 칠언절(七言絶),로 한시(漢詩)를 담은

진경(眞景)의 화천(畵帖)은 곡운구곡도(谷雲九谷圖)로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행정수복이후 이곳 사내면 유도회에서는 매년 춘추(春秋)에 존묘유현(尊墓儒賢)이신

곡운삼연동봉명탄(谷雲三淵東峰明灘)등 제선생(諸先生)의 추모제(追募濟)를 여기서 지내고 있으며

이곳을 후세에 전하여 우리의 충효사상과 충현의 고상한 생활상이 계승되기를 바라면서 이곳을 보존하고자 합니다.
19991. 4. 29
대한유도회 사내면회 회장 신만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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